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한국의 성씨 (문단 편집) == 성씨별 상징(종문) == 2016년 이후로 각종 커뮤니티에서 유럽의 [[문장(그림)|문장]]이나 일본의 [[가몬(일본)|가몬]]처럼, 한국에도 성씨별로 상징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화제가 되었다. ||[[김해 김씨|[[파일:김해 김씨 종문.svg|width=100]]]] ||[[밀양 박씨|[[파일:밀양 박씨 종문.svg|width=100]]]] || || [[김해 김씨]]의 종문 || [[밀양 박씨]]의 종문 || 이런 문양들은 일종의 만들어진 전통으로, 디자인의 유사성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일본]]의 [[가몬]]을 베껴 근현대에 완전히 새로 만들어낸 것이다. 전통적으로는 가문마다 고유의 문양을 떡살에 넣어 사용하기는 하였으나, 오늘날과 같이 가문 자체를 상징하는 문장이 한국에 처음 등장한 것은 대한제국 황실을 상징하는 [[이화문]]을 만들었을 때이다. 조선이 황제국을 자칭하면서 여러 부문에서 선배격인 [[일본 제국]]의 풍습을 많이 참고하였고, [[일본 황실]]의 국화문장을 따라하여 전주 이씨의 상징 자두꽃(오얏꽃)을 도안으로 만든 것이다. 이화문 외의 다른 가문들의 경우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소장중인 가장보(家章譜)[[https://www.nfm.go.kr/common/data/home/relic/detailPopup.do?seq=PS0100200100109939400000|#]]의 가장(家章)과 문장(紋章)의 사용이 조선에는 없는데 일본에서는 이전부터 은행, 회사, 조합, 상업가, 개인가정 등에서 가장과 문장을 사용하는 풍습이 있다고 소개하는 내용과 [[매일신보]]에서 1916년 10월부터 12월까지 연재되었던 가장연구(家章硏究)[[http://www.koreanhistory.or.kr/newsPaper.do?pageType=listRecords&year=1916&month=10|#]] 등을 통해 일제시대 무렵에 처음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일본 전통 예복에는 자기 가문의 문장을 옷에 수놓기 때문에 조선인이 일본 복식을 입을 때 사용하기 위해 만든 것으로 보인다. 현재는 이런 상징물을 종친회마다 로고, 마크, 심볼 등 제각각으로 부르며, 인터넷상에선 [[국어사전]]에 실리지 않은 신조어인 '종문(宗紋)'으로도 알려져 있다. 또한 [[해주 오씨]]처럼 같은 본관임에도 종친회가 통합되지 않아서 상징이 저마다 다른 경우도 있다. [[http://www.haejuoh.net/htmls/haejuo01-4.htm|해주오씨대동종친회]] [[http://www.hjoh.net/sogae/sg_logo.htm|해주오씨대동종회]] [[http://www.hjo.co.kr/page_view.html?menu_id=history1&page_no=6|해주오씨대종회]] 종친회별 상징과는 별개로, 2009년 [[경상북도]]에서는 종가 문화 명품화 프로젝트를 추진하여 각 문중이 보유한 고택[* 오래된 집]과 종택[* 종가가 대대로 사용하는 집]을 상징하는 고유한 로고를 만들기도 하였다. [[http://www.asiatoday.co.kr/view.php?key=20150924010016074|경북의 종가(宗家), 세계적 명품문화로 발돋움]]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1111811185&code=940100|문중 고택도 '브랜드 시대']] 이러한 사실이 잘못 전해져 ‘한국의 종문은 2009년 경상북도에서 대대적으로 제작한 것이 기원’이라는 잘못된 주장이 있었는데,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005012690|경북도에서 제작한 102개소 종가 디자인]]은 앞서 언급했듯이 '종가 건축'을 브랜드 이미지화한 것에 불과하다. 상징 이미지가 중요한 시대에 이르렀기 때문인지, 비록 전통은 아니지만 오늘날 규모 있는 가문들은 대부분 '종문(宗紋)'으로 불리는 로고들을 웬만하면 갖고 있는 추세이다. 물론 '종문(宗紋)'의 유무에 따라 명문가의 여부가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대표적인 명문가인 [[신 안동 김씨]] 화수회는 딱히 '종문(宗紋)'이라 부를 만한 로고를 갖고 있지 않다. "일제시대 이전까지 없었던 가문의 문장을 왜 이제와서 쓸데없이 만드느냐?"는 비판도 있다. 또한 대놓고 일본 가몬을 따라했기 때문에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각 군현의 로고가 없었던 조선 시대와 달리 오늘날에는 지자체마다 CI가 만들어져 요긴하게 사용되듯이, '종문(宗紋)' 또한 여러모로 다양한 곳에 사용된다. 족보와 종보 또는 N주년 기념서적 등 각종 출판물 표지에 사용되고, 종친회의 깃발[宗旗]에도 사용되며, 심지어는 배지같은 조형물을 만드는 종친회도 있다. 대전의 '뿌리공원'에는 각 성씨의 이미지를 조각상으로 상징화한 조각공원이 있는데, 여기에 각 가문의 종문 또한 함께 조각되어 있다. 보학 전공자나 족보/성씨에 대한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방문할 만한 공간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